삼성증권 사태와 '팻 핑거·시세 폭락·내부통제 부실' 판박이
이찬진 금감원장 "인허가 리스크 고려해야 할 구조적 결함"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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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썸코리아의 이재원 대표.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발생한 62만 개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가 8년 전 삼성증권의 112조 원 유령주식 사건과 구조적으로 판박이처럼 닮아 충격을 주고 있다.
직원의 단위 입력 실수로 천문학적 규모의 허수 자산이 생성된 점, 이를 받은 일부 이용자의 매도로 시세가 폭락한 점, 그리고 기본적인 '실시간 자산 대조' 시스템이 이를 전혀 걸러내지 못한 점까지 사건의 전개 양상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단순 실수가 아닌 "제도권 진입을 가로막는 치명적 결함"으로 규정하며 '인허가 리스크'까지 거론하는 등 고강도 압박에 나섰다.
◇ '원' 대신 'BTC' 입력…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부른 '팻 핑거' 재현
지난 6일 저녁 빗썸이 진행한 랜덤박스 이벤트에서 직원은 당첨자 249명에게 지급할 보상 단위를 '원(KRW)' 대신 '비트코인(BTC)'으로 잘못 입력했다.
당초 1인당 2000원에서 5만 원이 지급되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2000개에서 5만 개의 비트코인이 계좌로 입금됐다.
당시 비트코인 시세(약 9800만 원)를 적용하면 1인당 최대 5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총 오지급 규모는 62만 개, 시가 환산 시 약 63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빗썸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175개에 불과했다. 고객 예치분 4만 2619개를 모두 합쳐도 턱없이 부족한 수량이 전산상 오류로 생성된 것이다.
이는 2018년 4월 6일 삼성증권 사태와 판박이다.
당시 우리사주 배당 담당자는 주당 '1000원' 대신 '1000주'를 입력했다. 주가 3만 9800원을 적용하면 1인당 3980만 원어치의 주식이 지급된 셈으로, 총 28억 주(약 112조 원) 규모의 유령주식이 발행됐다.
삼성증권 총 발행 주식 수의 31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두 사건 모두 금융권에서 이른바 '팻 핑거'로 불리는 입력 실수가 발단이었으나, 더 큰 문제는 실제 보유량을 초과하는 지급 요청을 시스템이 아무런 경고 없이 승인했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금융 시스템이나 고도화된 거래소라면 실제 보유 자산(지갑 잔고)과 장부상 지급액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즉시 거래가 차단되지만, 빗썸은 회사 보유량의 500배를 초과하는 지급을, 삼성증권은 발행 한도를 31배 넘기는 배당을 아무런 제동 없이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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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빗썸 라운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
◇ '0'이 '63조'로 둔갑…있지도 않은 코인이 현금화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입력 오류가 아니라, '장부 거래'의 편의성에만 기대어 필수적인 검증 장치를 방기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금융기관과 거래소는 신속한 처리를 위해 전산상 숫자가 오가는 '장부 거래' 방식을 채택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면 장부상 숫자가 변동될 때, 실제 블록체인 지갑의 보유량과 장부상 총액을 실시간으로 대조하여 정합성을 검증한다.
특히 이벤트 보상의 경우, 사전에 확보된 물량을 별도의 전용 계정으로 옮긴 뒤 이를 이용자에게 '전송'하는 것이 업계 표준 절차다.
애초에 없는 물량을 '입력'만으로 생성해내는 것 자체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빗썸의 시스템은 이 모든 안전장치를 건너뛰고 '전산상의 허구'를 '실재하는 자산'으로 무사통과시켰다.
직원이 63조 원어치의 허수 코인을 입력하는 순간, 시스템은 실제 지갑에 그만한 코인이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이를 비트코인으로 인식했다.
이용자가 이를 매도해 원화로 바꾸는 과정, 심지어 은행 계좌로 출금해 '진짜 돈'으로 챙기는 과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6일 오후 7시 30분경 빗썸의 비트코인 가격은 타 거래소 대비 17% 이상 폭락한 8111만 원까지 주저앉았다. 같은 시각 업비트 시세는 9700만 원대를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가짜 코인이 매도 체결되는 순간, 빗썸의 법인 계좌에 있던 실제 현금이 빠져나간 셈이다.
일각에서는 빗썸의 이번 행태가 금고에 현금이 없는 상태에서 수십조 원짜리 위조수표를 발행해 유통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투명성이 무색하게도, 내부 통제 장치가 없는 중앙화 거래소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삼성증권 사태 역시 비슷한 구조였다. 발행되지 않은 유령주식이 예탁결제원 시스템과 연동돼 시장 전체에서 유효한 권리로 인정받았고, 직원들이 이를 실제 매도하면서 주가가 11.7% 급락했다.
두 사건 모두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부상 숫자가 검증 없이 유통되며 실제 시장 가격을 왜곡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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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2026년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금감원장 "인허가 리스크 발생할 수도"…빗썸 '재앙적 상황' 자초
사태가 커지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은 이찬진 금감원장 주재로 긴급 대응회의를 연 뒤 곧바로 현장 점검반을 급파했다. 금융위도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이재원 빗썸 대표를 소환했다.
특히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단순 오기입이 아니라, 잘못된 데이터로 실제 거래가 실현됐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빗썸의 시스템이 가짜 코인을 진짜로 인식해 매도와 현금 출금까지 허용한 점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이 원장은 "이번 사태는 가상자산 거래소 정보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거래소의 제도권 진입은 어렵다"고 못 박았다.
특히 이 원장은 "정보시스템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인허가 리스크까지 발생할 수 있게 하는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빗썸의 사업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경고장이다.
빗썸은 사태 수습을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빗썸 측은 공지를 통해 "이번 오류로 인한 시세 급락 과정에서 '패닉셀'로 손해를 본 고객에게 차익 전액과 10% 추가 보상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1000억 원 규모의 고객 보호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가장 기초적인 자산 검증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삼성증권 사태 당시 당국은 거액의 과태료와 경영진 해임 권고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빗썸 역시 이에 준하는 강력한 제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