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협상 기간 내내 세제개편안으로 이슈몰이
대통령이 대주주 양도세 면제한도 축소 승인했다?
국정기획위 “기재부 해체·금융위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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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알파경제=이형진·강명주·김혜실 기자]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예정됐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 재무장관의 회담 일정이 취소됐습니다.
한미 관세협상 끝물에 미국행을 택했던 구 부총리는 베센트 재무장관과의 막판 딜에 총력을 펼치겠다는 다짐을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2025년 7월 29일자 [현장] 구윤철 뒷북방미, 관세협상 역할 미미 전망…"오지 말래도 갔어야" 참고기사>
구 부총리 앞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경제총사령탑’이라는 수식어에 미치치 못하는 제한적 역할만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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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사진=연합뉴스) |
◇ 기재부, 한미 관세협상 브리핑에서 세 번째로 호명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SNS에 올린 ‘한미 관세 협상 15% 타결’ 소식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같은 날 오전 8시 예정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브리핑에 당연히 눈과 귀가 모였습니다.
김용범 실장의 모두 발언에서 고생했던 협상팀을 치하하면서 관계부처를 하나 하나 열거하는 와중에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교섭본부, 그리고 기획재정부가 김 실장의 입에서 세 번째로 호명됐기 때문입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정부 부처에서 의전 서열이 가장 앞선 곳은 기획재정부입니다. 기획재정부가 공식 문서나 호명에서 타 부처 뒤에 호명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현권 법률사무소 니케 대표변호사는 “김용범 실장은 기재부 차관과 금융위 부위원장 등 고위 관료를 지냈기 때문에 실수할 리가 없다”면서 “의도적인 호명이었다면 기재부에 대한 대통령실의 인식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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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 기재부, 협상 기간 내내 세제개편안으로 이슈몰이
기재부는 구윤철 부총리가 한미 관세협상을 이유로 미국행을 결정하기 직전 세제개편안을 띄웠습니다.
특히 시장에 가장 민감할 수 있는 대주주 양도세를 50억에서 10억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슬그머니 포함됐습니다.
국회의 한 중진의원은 알파경제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 시절 추경호에서 최상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추경호 부총리가 후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총대를 멨던 것으로 안다”면서 “대주주 양도세 50억 확대는 기재부로서 날벼락 쿠데타나 다름없는 일로 받아 들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대주주 양도세 축소 당시 기재부는 금융위원회의 의견을 청취해 15억에서 20억원 수준의 대주주 양도세 축소를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투자세를 집행하면 해결될 일이지만, 금투세 시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주식투자 세액을 걷으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윤주호 엄브렐라리서치 대표이사는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유일하게 주목받았던 수치는 주가 5000이었다면서 대주주 양도세 면제 폭을 축소하면 5000은커녕 3000선도 불가능한 수치”라면서 “차라리 금투세를 시행하는 것이 되려 나을 정도”라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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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 대통령이 대주주 양도세 면제한도 축소 승인했다?
특이한 건 기재부의 세제개편안을 이재명 대통령이 승인했다는 뉘앙스의 보도가 줄을 이었습니다.
명확한 키워드는 대통령실 승인이나 협의, 대통령 보고 등으로 두루뭉술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미 대통령이 승인해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는 식입니다.
이런 기조의 기사 대부분은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이 작성했으며,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쓴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치호 경제평론가 겸 행정학 박사는 “김용범 정책실장 브리핑에서 나온 후일담처럼 이재명 대통령은 관세협상 때문에 다른 사안을 걸어가면서 읽을 정도로 절대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면서 “세제개편안은 시행령이기 때문에 기획재정부 장관이 책임지고 추진해도 무방한 사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 재가를 받아 이슈몰이하는 것이 아닌 구윤철 부총리와 기획재정부가 밀어붙이고 있을 가능성에 힘이 실립니다. 알파경제 취재를 종합해보면 기재부는 그간 형식적으로라도 진행해왔던 금융위에 해당사안에 대한 의견청취도 마음대로 누락했습니다.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현장간담회에서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자본이)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말을 해 왔는데,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세제 개편은 그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하며, “정치가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오락가락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같은 당 이언주 의원 역시 신중론을 펼치면서 여당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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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 국정기획위 “기재부 해체·금융위 해체”
사실 이재명 정부 들어 기획재정부의 조급함은 곳곳에서 감지됐습니다. 대통령 공약 중 하나가 기재부 해체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정기획위원회가 금융위원회를 기획재정부와 통합하고,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는 방향의 조직개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전해집니다.
금융위도 기재부도 전부 해체되는 운명입니다.
여기서 남은 것은 국내금융 정책을 누가 가져가느냐의 문제인데요. 기재부 입장에서는 국내· 국제 금융정책을 반드시 가져와야 기존 위상을 어느 정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새로 구성될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감독원과 금소원을 지휘하는 모양새지만, 국내 금융 정책을 기재부가 가져오면 금감원을 통해 금융감독의 권한은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재부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것은 모두 주지하는 사실”이라면서 “한미 관세협상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접어 들었더라도 기재부 해체가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에 정권과의 딜 차원에서 서둘러 세제개편안 띄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알파경제 강명주 기자(press@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