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폭탄에 리니언시 노린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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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설탕을 살펴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가 본격화되자 국내 전분당 시장을 과점한 대기업들이 일제히 제품 판매 단가를 하향 조정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최근 제당업계에 부과된 4000억원대 과징금 철퇴와 맞물려, 수천억원의 벌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 성격의 '면피용 인하'라는 지적이 나온다.
◇ 공정위 칼날 다가오자…약속한 듯 '3~5% 인하'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사조CPK는 전분, 물엿, 과당 등 주요 품목의 가격을 3~5%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CJ제일제당 역시 일반 소비자용(B2C) 전분당 제품 가격을 최대 5% 내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3일 대상이 B2C 제품 가격을 5%, B2B 납품 단가를 3~5% 낮춘 데 이어, 주요 과점 업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폭의 하향 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이들은 원재료 가격 변동을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기 위한 자발적 조치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상, 삼양사, 사조CPK, CJ제일제당 등 4개사의 담합 의혹 조사를 본격화한 직후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 옥수수값 12% 폭락…'물가 안정' 명분은 기만
업계가 내세운 '원재료 하락분 반영' 논리는 거시경제 지표와 크게 엇갈린다.
전분당의 핵심 원료인 국제 옥수수 가격은 지난 20일 기준 부셸당 4.28달러(428센트)로 전년 동기 대비 12.7% 급락했다.
원가가 폭락하며 막대한 이윤을 챙겼음에도 그동안 침묵을 지키다, 정부 조사가 임박해서야 고작 5% 안팎의 인하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독과점 시장의 전형적인 '비대칭적 가격 전가'라고 꼬집는다.
원가 상승분은 즉각 소비자에 전가하면서 하락분은 내부에 쌓아두다 제재 위기에 처해서야 일부를 토해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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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
◇ '4083억' 과징금 폭탄…리니언시 노린 꼼수?
이번 연쇄 인하의 핵심 배경에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둘러싼 철저한 법률적 계산이 깔려 있다.
공정위는 지난 12일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3사의 설탕 담합을 적발하고 식품업계 사상 최대이자 전체 담합 사건 중 역대 두 번째 규모인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제당 시장과 전분당 시장을 사실상 동일한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만큼, 업계 전반으로 수천억원대 공포가 번진 상황이다.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과징금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위법 행위의 즉각 중단'이라는 필수 전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결국 3~5%의 단가 인하는 소비자 편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감면 혜택을 확정받기 위해 기존 합의를 파기했다는 '행위 중단 알리바이'를 사법 당국에 제시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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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영구 퇴출' 경고 통할까
과점 기업들의 오랜 꼬리 자르기 관행에 정부도 칼을 빼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설탕·밀가루·육고기 등 경제 전반의 담합 행위를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며 "반복될 경우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퇴출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공정위도 제분사 7개사의 밀가루 담합 심의 계획을 전원회의 결론 전에 이례적으로 사전 공개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점 기업들의 이번 잇단 단가 하향을 두고 일시적인 '가격 인하 쇼'로 사법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카르텔의 전형적인 생존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회피하기 위해 얄팍한 꼼수를 부리는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단순한 조사를 넘어 근본적인 제도 수술이 시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과거부터 담합을 반복해 온 상습 누범 기업에 대해서는 리니언시 혜택을 영구적으로 배제하는 등, 정부의 징벌적 제재가 실질적인 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